지난 1월부터 진행된 '실리콘 밸리 스토리'의 제1부 에피소드들에는 빌 게이츠의 이야기가 빠져있다. 많은 독자들이 분명 PC 산업의 절반 이상으로 성장한 소프트웨어 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기적적 성공담이 빠져버린 것을 의아해 할 것이지만, 이 질문에 대한 필자의 답변은 의외로 간단하다. 빌 게이츠는 실리콘 밸리의 인물이 아니며, 팔로알토를 중심으로 지난 30년간 줄기차게 성장한 실리콘 밸리의 지도상에는 빌 게이츠의 자취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정확히 25년 전 창업한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실리콘 밸리는 물론 캘리포니아 주에 조차 한 번도 연고를 두지 않고 지금까지 사업을 추진한 매우 독특한 기업이다. 사실 실리콘 밸리에 적을 두지 않고 PC 시장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들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동부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는 IBM사를 선두로, 한 때 소프트웨어 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한 미치 카포의 로터스사도 보스턴의 '루트 128' 지역에 기반을 두고 성장했으며, 현재 네트워크 시장에서 선두를 유지하고 있는 노벨사 또한 유타 주의 솔트레이크(Salt Lake) 시에 기반을 둔 회사다. 하드웨어 측면에서 보아도, 텍사스인스트루먼트사나 모토롤라사 역시 서부 지역과는 무관하게 성장했지만 실리콘 밸리의 팽창 과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아웃사이더들의 성공담은 시작부터 실리콘 밸리와 우호 관계를 유지해 왔고, 이들의 성장 과정은 지리적 위치의 차이만 있을 뿐 실질적으로 밸리의 성장과 맥을 같이 해왔다.
그렇다면,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사도 앞에서 언급한 아웃사이더 기업들 중의 하나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PC 시장을 언급하면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대명사처럼 부각되어 버린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성공담은 분명 실리콘 밸리에 지각 변동을 일으킨 많은 사건들의 주인공이지만, 애석하게도 실리콘 밸리의 터줏대감들인 디지털리서치사, 애플사, 휴렛팩커드사, 썬마이크로시스템사, 그리고 실리콘그래픽사사는 빌 게이츠의 긍정적인 영향보다는 부정적 측면을 더 부각시키고 있다.
PC 시장에서 가장 운이 놓은 남자, 소프트웨어 시장을 실리콘 밸리에서 도려내 간 장본인, 밸리의 낭만주의자들을 매몰차게 몰아낸 현실주의자, 그리고 윈텔이라는 제국주의로 실리콘 밸리의 모든 기업들을 종속 관계로 탈바꿈시킨 혁명주의자 등이 실리콘 밸리가 빌 게이츠에게 부여한 여러 수식어들이다.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실리콘 밸리에 '윈텔'이라는 '그들만의 리그'를 창출했으며, 그들이 일구어낸 거대한 제국은 실리콘 밸리의 대부분의 기업들을 '안티-윈텔'이라는 새로운 연합 체제로 몰아버렸고, 이들은 지금까지도 위협적으로 실리콘 밸리의 기업들을 여러 각도에서 조율하고 있다.
무일푼으로 뉴멕시코 주의 알버커키 시에서 최초의 퍼스널 컴퓨터를 선보인 에드 로버츠의 미츠사를 배신하면서 실리콘 밸리로 진입한 빌 게이츠는, 당시 PC 시장에서 운영체제의 표준을 설정한 게리 킬달의 CP/M 운영체제를 교묘한 상술로 도용하여 'MS-DOS'라는 새로운 표준 설정으로 입지를 확보했다. 그 후 애플사 몰락 과정의 가장 큰 수혜자로서 혹은 IBM사의 후광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은 기업으로서, MS사는 실리콘 밸리라 불리는 태양계에 존재하는 별은 아니지만 이 곳에서 생명력을 키워가고 있는 모든 위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산소 공급책 역할을 하는 공룡 기업으로 자라났다.
제2부인 '윈텔과 안티-윈텔'은 빌 게이츠와 앤디 그루브의 신화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앞으로 3개월에 걸쳐 진행될 윈텔의 성공담은 마이크로소프트사와 인텔사의 성공담인 동시에 실리콘 밸리의 많은 천재들을 좌절시킨 비극적 사건들로서, 필자는 애플사의 매킨토시 라이선싱 비화를 시작으로 게리 킬달과의 DOS 분쟁, 그리고 IBM사와의 줄다리기를 마지막으로 윈텔과 안티-윈텔의 성장 과정을 가감없이 기술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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