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2. 코페르니쿠스의 항해
80년대 실리콘 밸리의 주인공은 단연 애플사다. 80년대 초반 퍼스널 컴퓨터가 태동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가 완숙단계에 접어든 90년대 초반까지 애플은 불행하게도 밸리의 모든 대형 사고들을 대변해왔다. 실리콘 밸리에서 R&D는 보험의 의미를 강하게 내포한다. IBM, HP, 인텔과 같이 각자의 분야에서 선두 자리에 있는 기업들은 매년 순이익을 기준으로 일정한 자금을 할당하여 급변하는 미래를 대비하는 치원에서 R&D란 이름의 보험을 들고 있다. AT&T사의 벨연구소와 루센트테크놀로지 연구소, IBM사의 순수과학연구소 그리고 제록스사의 파크연구소 등은, 이 거대 공룡 조직들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보험의 임무를 띄고 천문학적인 자금을 소모하는 대표적인 소비집단이다.
실리콘 밸리의 '볼륨 원칙'은 이들 대표기업들에게 지속적으로 밸리의 시장 규모, 즉 볼륨을 넓히지 못하면 수평선 끝으로 추락할 수 밖에 없다는 '코페르니쿠스의 항해'를 묵시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IBM사의 SQL 언어, 벨연구소의 유닉스 운영체제, 파크연구소의 GUI, 이더넷, 그리고 포스트스크립트 언어 등은 모두 이들 공룡 집단들이 디지털 시장을 팽창시키기 위해 보험의 의미로 추진된 프로젝트들이다.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없었다면 이들의 항해는 벌써 벼랑 끝으로 추락해버렸을 것이다. 물론 누구도 예상치 못하는 미래의 테크놀로지에 대한 최상의 대비책은 예상 가능한 모든 테크놀로지들에 대한 프로토 타입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프로젝트들의 프로토 타입은 천문학적인 자금을 요구하며, 따라서 공룡 기업들의 자금력이 아니면 도저히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이다. 대부분의 신생기업들에게는 단지 '꿈의 시나리오'에 불과한 것이다. 애플사의 무모함은 여기서 시작된다.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가 밸리의 미래를 기약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애플사는 이들 공룡 기업들에 의해 운항되던 '코페르니쿠스의 항해'의 선봉장 역할을 자청하고 만다. "여기까지는 안전하니 나를 따르라!"라는 한 마디가 그렇게 중요했던가! 진정 이보다 더 무모한 도전은 없었다. 판돈만 수천 억 달러에 달하는 지존들의 세력 싸움에 '넘버3'가 낄 곳이 있을 리 만무했다.
1985년 애플사를 이끌게 된 존 스컬리와 장 루이 가세는 기교파 장사꾼들이었을 뿐 결코 엔지니어는 아니었으며, 이들의 방황은 '포스트 스티브 시대'의 애플사를 하루 아침에 비전을 상실한 회사로 전락시켜버렸다. 데이빗 리카도의 두 가지 능력을 서로 반쪽씩 소유했던 '두 명의 스티브'의 동반 하차가 애플사의 몰락을 예고하긴 했지만, 그 누구도 이와 같은 무모한 도전에 의해 애플이 추락하는 시나리오는 예상치 못했다. 펩시맨 존 스컬리는 불행하게도 실리콘 밸리와 디트로이트의 차이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스컬리는 1985년부터 뉴턴(Newton) PDA 단말기의 실패로 애플사에서 해고되는 1993년도까지 약 8년 동안, 차라리 세상의 빛을 보지 않는 편이 나았을 수십 개의 '도루묵 프로젝트'들에 10억 달러 이상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허공에 뿌려진 이 천문학적인 투자액은 기존의 공룡 기업들이 따로 보험료의 의미로 떼어놓은 것이 아니라 애플사의 생계비와도 같은 것이었으며, 이 부담은 결국 죄 없는 매킨토시 사용자들에게 전가되면서 매킨토시는 소생 불가능한 치명타를 받게 된다.
존 스컬리는 애플사의 사령관으로 부임하자마자 R&D 비용을 두 배로 늘리기 시작한다. 1985년 1억 달러를 약간 웃돌던 애플사의 R&D 비용은 2년만에 2억 달러를 넘어섰고, 애플사의 실낱같은 재기 가능성에 쇄기를 박게되는 1989년에는 자그마치 4억 달러가 넘는 금액을 매킨토시에 쏟아붓게 된다. 하지만 애플사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콩을 심을 때 팥을 심고 있었다. 잡스의 리사와 매킨토시 프로젝트가 애플사의 '나 홀로 프로젝트'의 시발점이었다면, 1986년 추진된 '아쿠아리우스(Aquarius)'라는 코드명의 프로젝트는 앞으로 8년간 지속된 스컬리의 고통스러운 오디세이를 알리는 전주곡이었다. 즉, 이 사건은 "밸리의 어떤 회사도 애플사보다 무모할 수는 없다"는 메세지를 만방에 알리기에 충분했다.
코드명 아쿠아리우스는 모토롤라의 진척없는 68000 시리즈 프로세서에 대한 염증과 날로 사세를 확장해가고 있는 인텔사의 독주에 위협을 느낀 애플사의 작은 반란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당시, 실리콘 밸리의 대표적인 CPU 생산업체 중 하나였던 모토롤라는 GUI 운영체제의 복합 그래픽을 원활하게 운용하기엔 역부족인 프로세서를 매킨토시에 공급해왔고, 매킨토시가 실질적으로 사용자들에게 강력한 컴퓨터로 인식되기 위한 최저의 연산 속도를 갖춘 68040 프로세서는 모토롤라의 내부 사정으로 그 출시 시기가 기약없이 늦춰진 상태였다. 결국 스컬리는 "모든 것은 우리가 한다"라는 특유의 배짱으로 '아쿠아리우스'라고 하는 마이크로프로세서를 탄생시키기 위한 물밑 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아쿠아리우스 프로젝트는 기존 인텔사와 모토롤라사 제한적인 CPU 생산방식인 CISC 방식에서 무한대의 가능성을 보유한 RISC 방식의 프로세서로 전환을 검토했으며, 더 나아가 한 대의 매킨토시에 4개의 CPU를 복합적으로 포함시키는 멀티 CPU 프로세서 체계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스컬리는 과연 누구를 위한 컴퓨터를 만들 작정이었던가? 그 당시 퍼스널 컴퓨터 프로세서 시장에 RISC란 개념은 아직까지 한번도 시도된 적이 없는 미지의 영역이었고, 멀티 CPU 프로세서는 슈퍼컴퓨터의 대명사인 크레이(Cray) 컴퓨터에만 제한적으로 시도된 메인프레임 테크놀로지가 아니었던가! 실리콘 밸리에서 누구보다도 많은 적(敵)을 갖고 있었던 애플사가 지난 10년간 PC 혁명의 동지로서 한 배를 탔던 모토롤라사에 도전장을 던진 이 사건은 스컬리가 이끄는 애플사의 오디세이가 얼마나 무모한 항해였던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으로 기록된다. 동시에 GUI 운영체제의 보편화라는 실리콘 밸리의 절대절명의 과제는 앤디 그루브와 빌 게이츠가 이끄는 '윈텔 제국'에 그 명분을 넘겨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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