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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복구정보/IT NEWS

(펌) 하형일의 실리콘 밸리 스토리 : Episode23

by CBL 2018. 7. 19.

사진: 애플 뉴턴





Episode 23. 애플사의 크라잉 게임-이보다 더 무모할 순 없다.

아쿠아리우스 프로젝트로 인해 애플사에게 더 이상 연합세력은 의미가 없어졌으며, 그들의 전선은 이제 동서남북의 전방으로 확장돼 버렸다. 북부전선은 모토롤라사와 인텔사의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에 선전포고를 내린 상태였고, 남부전선은 앞으로 처절하게 펼쳐질 MS사와의 운영체제 전투에 대비해야 했다. 그런가 하면 벌써부터 전세가 꺾인 동부전선은 IBM PC 클론들과 힘겨운 전투를 벌이고 있었고, 서부전선은 HP사의 레이저 프린터와 어도비사의 서체 분쟁으로 소모적인 피를 흘리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애플사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GUI 테크놀로지 운영체제는 MS사와 법정싸움에 휘말려 지루한 소모전을 치러야만 했고, PC 시장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개편시키게 될 객체지향 운영체제를 겨냥한 '핑크(Pink)' 프로젝트, 매킨토시 시스템에 음성 인식 기능을 추가시키는 '레드(Red)' 프로젝트, 오늘날까지 가장 우수한 GUI 운영체제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매킨토시 '시스템 7 & 8'의 모체가 될 '블루(Blue)' 프로젝트, 마이크로프로세서도 없이 RISC 체제의 차세대 운영체제를 추진한 '재규어(Jaguar)' 프로젝트, 그리고 펩시맨 스컬리를 벼랑으로 몰아간 차세대 PDA 기기를 꿈꾸던 '뉴턴(Newton)' 프로젝트는 시간이 흐를수록 출발 당시보다 서너 배 이상 몸통이 불어나 애플사의 숨통을 조이기 시작했다.

아쿠아리우스 프로젝트는 3년간의 준비작업에도 불구하고 인텔사와 모토롤라사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를 피부로 느끼면서, 애플사는 천문학적인 자금만 낭비한채 1989년 '도루묵 프로젝트' 1호로 공중분해 되어 버렸다. 또 스티브 잡스의 NeXT 운영체제와 함께 객체지향 프로젝트의 원조로 불리는 '핑크' 프로젝트는 서너 명의 엔지니어로 시작해 결국에는 재규어 프로젝트를 통합하면서 수백 명의 엔지니어들이 붙게 되어 애플사 최대의 프로젝트인 '파워PC'란 이름으로 상품화되지만, 애플사는 이것을 계기로 인텔 프로세서와의 영원한 결별을 알리는 동시에 한때 천적(天敵)으로 간주됐던 IBM사와 실익없는 동맹관계를 형성하면서 밥 노이스와 빌 게이츠가 이끄는 '윈텔 제국'을 수면 위로 떠올리게 된다.

애플사의 유일한 효자 프로젝트였던 '블루'가 이끌어가는 '시스템 7'의 보급형 매킨토시 상품들인 클래식, LC, Si, Ci 그리고 Fx 기종들은 나머지 프로젝트들의 도루묵화에 의해 야기된 천문학적인 손실을 떠안으며 최후의 마지노선을 긋게 되지만, 윈텔 진영의 386 프로세서와 MS사의 '윈도 3.0'의 화력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탈진된 상태였다. 1990년 윈텔 진영의 PC 시장 점유율을 90퍼센트를 웃돌았으며, 애플사의 시스템은 더 이상 PC 시장의 유일한 GUI 운영체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1989년 매킨토시 최초의 노트북 모델로 시장에 선보였던 매킨토시 포터블(Mac Portable)의 참패는 장 루이 가세를 애플호에서 이탈시켜 버렸으며, PDA라 불리는 신개념의 초소형 컴퓨터로 매킨토시에 버금하는 PC 혁명을 꿈꿨던 뉴턴마저도 사용자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하면서 존 스컬리의 무모한 오디세이는 1993년을 끝으로 대장정의 막을 내리게 된다.

여기서 애플사와 '안티-윈텔' 진영의 궁극적인 몰락의 모든 열쇠를 쥐고 있는 아쿠아리우스 프로젝트를 다시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아쿠아리우스가 일단 성공하면 애플사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분야를 모두 커버하는 완벽한 회사가 될 수 있지만, 만에 하나 실패로 끝나게 된다면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크라잉 게임'을 요구했다. 닐 조단의 역작 <크라잉 게임>에 나오는 '전갈과 개구리'의 일화처럼, 애플사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전갈의 길을 답습하고 있었다. 개구리의 등에 업혀 물길을 지나는 과정에서 전갈은 난데없이 개구리의 등에 독침을 쏘게 된다. 냇물 한가운데서 독침을 맞은 개구리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왜, 하필이면 여기서....."라며 반문하지만 물 속으로 함께 침몰하던 전갈은 개구리에게 이렇게 답변한다. "이건 내 본능이야! 나도 어쩔 수 없었단다."

애플사는 이렇게 PC 혁명의 혈맹이었던 모토롤라사의 등에 독침을 쏘면서 무모하게 침몰해갔다.

돌이켜 보건데, 애플사가 80년대에 추진한 테크놀로지들은 실로 대단한 것들이었다. PC 시장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꿔 놓은 매킨토시의 GUI 테크놀로지를 시작으로 멀티태스킹과 객체지향 운영체제, 포스트스크립트 언어, RISC 프로세서 그리고 뉴턴으로 대변되는 PDA 기기는 지난 10년간 실리콘 밸리가 궁극적으로 추진하게 될 모든 분양의 집합체라고 볼 수 있다. 애플사의 이러한 실험정신이 없었다면 오늘날 디지털 문명의 현주소는 지금보다 훨씬 퇴보된 위치에서 공전을 거듭하고 있었을 것이며, 적어도 애플사가 이룩한 기술적인 업적은 그 누구도 평가절하할 수 없는 실리콘 밸리의 역사인 것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하지만, 애플사의 이 모든 공로에 아무리 후한 점수를 준다고 하더라도, 80년대 중반과 후반에 걸쳐 추진된 애플사의 프로젝트들은 실리를 무시함은 물론 명분조차 제대로 유지하지 못한 채 대부분 도루묵 프로젝트들로 전락되면서, 최악의 결과인 윈텔 제국의 독과점을 앞당기는 일등공신이 되어버렸다. '안티-윈텔 진영'의 비극은 윈도 3.0 출시를 기점으로 무너져버린 시장 점유율이 아니라 아직까지 애플사라는 회사가 윈텔 제국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회사라는 사실이다.

1995년 윈도 95라는 거대한 버섯구름이 쿠퍼티노의 심장부인 애플타운의 하늘을 뒤덮을 때까지 그들은 자신들의 위치를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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