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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복구정보/IT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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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하형일의 실리콘 밸리 스토리 : Episode11 Episode 11. 최초의 퍼스널 컴퓨터 '알테어' 1974년 인텔사의 8080 프로세서는 역사적인 퍼스널 컴퓨터 시대를 알리게 된다. 8080 프로세서 이전까지만 해도, 컴퓨터란 보통 사람들과는 무관한 단어였다. 누가 감히 컴퓨터를 책상 위에 올려놓을 수 있으리라 상상이나 했던가? 그러나 미츠(MITS)사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일을 해냈다. 8080 프로세서는 기존의 반도체 상품에 비해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즉, 기존의 독립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로직 칩의 폐쇄성에서 벗어나 사용자들이 직접 프로그램을 짤 수 있는 옵션을 제공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제품이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반도체는 판매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하지만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8080 프로세서는 엔드 유저에게 무한대의 응용성을 제..
(펌) 하형일의 실리콘 밸리 스토리 : Episode10 pisode 10. 메모리칩과 마이크로프로세서의 탄생 60년대 지적재산권에 대한 실리콘 밸리의 일반화된 상식은, 누구든 먼저 상품을 선보이면 그것으로 지적소유권이 인정되는 분위기였고, 크로스 플랫폼 라이선스에 관한 법적 조항 역시 상품의 제작 시 상호 특허권을 도용하여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등 다양한 유권해석이 가능한 애매모호한 법률들이 많았다. 이에 지난 30년 동안 실리콘 밸리에서는 특허권에 대한 법정 시비가 끊임없이 이어졌고, 이것이 엔지니어들 못지 않게 이곳 실리콘 밸리를 변호사들의 천국으로 탈바꿈시켜놓았다. 실리콘 밸리는 일반 제조 산업에 비해 법의 잣대에 의해 회사의 명암이 갈라지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빈번한 편이다. 1968년 인텔사는 두 가지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나는 노이스와 무어의..
(펌) 하형일의 실리콘 밸리 스토리 : Episode9 사진: 앤디 그루브, 로버트 노이스, 고든 무어 Episode 9. 유태인 1.5세 앤디 그루브 인텔에 입사하다. 노이스와 무어가 설립한 인텔이라는 작은 회사는 실리콘 밸리에서 활동하던 모든 엔지니어들에게는 선망의 일터였다. 당시 그들의 명성은 휴렛과 팩커드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꿈의 테크놀로지로 불리는 집적회로의 아버지인 노이스와, '무어의 법칙'의 창시자인 무어와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엔지니어들의 이력서가 인텔사의 창립 소식과 더불어 이들의 책상 위에 수북히 쌓이게 된다. 하지만 노이스는 페어차일드사에서 인연을 맺은 앤디 그루브를 총괄 매니저로 들여앉힘으로써 실리콘 제국을 향한 첫 단추를 완벽하게 끼우게 된다. 앤디 그루브를 헝가리 태생의 유태인 이미 1.5세로, 세계 제2차 대전 동안 나치 치하에..
(펌) 하형일의 실리콘 밸리 스토리 : Episode8 Episode 8. '무어의 법칙'이 밸리를 지배한다. 컴퓨터 업체의 대명사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빅 블루(Big Blue)' IBM사가 퍼스널 컴퓨터 시작에 뛰어든 것인 PC 시장의 외형 규모가 1천만 달러는 넘기 8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이다. IBM은 PC 시장 진출과 동시에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각종 매스컴을 총동원하여 IBM PC의 대대적인 'PC 캠페인'에 나섰고, 이즈음부터 IBM사의 상표가 붙지 않는 모든 PC들에게는 '클론(복제품)'이라는 꼬리표가 붙여지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를 일반인들로 하여금 IBM사가 마치 PC의 역사를 주도해온 일등공신인 것처럼 오판하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한편 인텔의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창립 5년만에 장난감 모형이 아닌 진짜 F-16 전투기의 성..
(펌) 하형일의 실리콘 밸리 스토리 : Episode7 Episode 7. 팽창하는 밸리와 디지털 경제의 태동 60년대의 역사는 캘리포이나 북쪽에 위치한 작은 밸리에서 펼쳐진 디지털 문화에 대해 매우 냉소적이었다. 아니, 무관심했다는 표현이 더 맞다. 올리브 스톤이 60년대를 정리하는 의미에서 추진한 대표적인 시네마 사가(Cinema Saga) 프로젝트인 , , 와 같은 영화들은 가장 실감나게 60년대를 표현했다는 찬사를 받고 있지만, 정작 그 시대의 어떠한 사건보다도 인류의 역사를 저 밑바닥부터 변화시키기 시작한 실리콘 밸리의 탄생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필자의 기억이 옳다면 아직까지 실리콘 밸리의 인물이나 사건을 소재로 제작된 영화는 한 편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당시 사람들이 실리콘 밸리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
(펌) 하형일의 실리콘 밸리 스토리 : Episode6 사진: 고든무어, 크레이그 바렛, 앤디 그루브, 폴 오켈리니 앤디 그루브 Episode 6. 노이스의 스톡옵션 파동 1957년 지구 반대편에서 대기권을 향해 솟아오른 한 대의 로켓은 페어차일드사는 물론 트랜지스터라는 개념 자체의 가치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8인의 배신자들에 의해 탄생된 페어차일드사는 실리콘이란 소재를 이용해 제품을 생산한 최초의 회사이기는 했지만 트랜지스터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제품을 생산한 유일한 회사는 아니었다. 달라스에 위치한 텍사스인스트루먼트, 피닉스에 위치한 모토롤라, 보스턴의 트랜지스톤(Transitron)과 레이디온(Raytheon) 등도 보다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트랜지스터의 상용화에 온갖 정열을 쏟아붓고 있었다. 당시의 트랜지스터 산업은 정교한 접합 기술이 요구되는 정밀..
(펌) 하형일의 실리콘 밸리 스토리 : Episode5 사진: 왼쪽부터 바딘, 쇼클리, 브래튼 Episode 5. 쇼클리와의 결별 "오 마이 페어차일드!" 윌리엄 쇼클리는 타고난 재주꾼이었다. 그는 당대를 주름잡았던 천재적인 물리학자였으며, 추상적인 이론을 도출해 실생활에 적용시킬 수 있는 체계적인 모델을 창출해낼 수 있는 뛰어난 엔지니어였다. 또 여가 시간에는 수준급의 마술을 선보이곤 하는 아마추어 마술사였으며, 70년대에는 '천재들을 위한 정자 은행'을 설립할 정도로 돈 키호테적인 끼가 철철 넘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결코 조직을 이끌만한 리더는 아니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쇼클리는 그가 동부에서 스카우트해온 실력 있는 인재들과 더불어 '20세기의 다이너마이트'로 불리는 트랜지스터의 상용화 기술에 박차를 가하게 되지만, 그의 융통성 없는 성격과 공격적..
(펌) 하형일의 실리콘 밸리 스토리 : Episode4 사진: 줄리어스 블랭크 (Julius Blank), 빅터 그리니치 (Victor Grinich), 진 호에니 (Jean Hoerni), 유진 클라이너 (Eugene Kleiner), 제이 라스트 (Jay Last), 고든 무어 (Gordon Moore), 로버트 노이스 (Robert Noyce) 와 샐던 로버츠 (Sheldon Roberts) Episode 4. 마이크로프로세서의 탄생 & 메인 프레임과의 먼 이별 마이크로프로세서의 탄생은 실리콘 밸리의 어떤 스토리보다 흥미진진하다. 무어의 법칙으로 대변되는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진화과정은 이 다큐멘터리 제3부쯤에 나올 '프로세서, 프로세싱, 그리고 프로그레스, 섹션에서 심도 깊게 다루겠고, 여기서는 마이크로프로세서의 탄생과정과 실리콘 밸리의 형성과정에서 핵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