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왼쪽부터 바딘, 쇼클리, 브래튼
Episode 5. 쇼클리와의 결별 "오 마이 페어차일드!"
윌리엄 쇼클리는 타고난 재주꾼이었다. 그는 당대를 주름잡았던 천재적인 물리학자였으며, 추상적인 이론을 도출해 실생활에 적용시킬 수 있는 체계적인 모델을 창출해낼 수 있는 뛰어난 엔지니어였다. 또 여가 시간에는 수준급의 마술을 선보이곤 하는 아마추어 마술사였으며, 70년대에는 '천재들을 위한 정자 은행'을 설립할 정도로 돈 키호테적인 끼가 철철 넘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결코 조직을 이끌만한 리더는 아니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쇼클리는 그가 동부에서 스카우트해온 실력 있는 인재들과 더불어 '20세기의 다이너마이트'로 불리는 트랜지스터의 상용화 기술에 박차를 가하게 되지만, 그의 융통성 없는 성격과 공격적인 통솔력은 쇼클리 트랜지스터 연구소의 효율성을 추락시키는 동시에 밥 노이스와 고든 무어를 중심으로 한 '8인의 배신자들'에게 쿠데타의 명분을 주게 된다. 윗 사람에게 신의를 잃으면 올라갈 자리가 없고, 아래 사람에게 신의를 잃으면 설 자리가 없다는 옛말처럼, 쇼클리는 노벨 물리학상 수상에 대한 흥분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그가 손수 스카우트했던 '8인의 배신자들'에게 실리콘 밸리의 미래를 내어주고, 트랜지스터와 무관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8인의 배신자들'은 쇼클리와의 결빌 직후, 세계 최초로 실리콘 소재만을 이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반도체 회사를 설립하게 되는데, 이 회사는 훗날 인텔, 내셔날 반도체, AMD 등 수십 개의 실리콘 관련 회사들로 '스핀오프(spin off)시키게 될 전설적인 페어차일드사로 성장하게 된다. 하지만 페어차일드사는 태생부터 이미 개국 공신들인 8인의 배신자들에 의해 공중 분해될 운명을 안고 있었다. 쇼클리의 연구소를 탈퇴한 8인의 배신자들은 트랜지스터라는 아이디어 상품에 대한 기술 외에는 실질적으로 가진 것이 없었고, 그들이 추구하는 집적 회로와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일반 가라지에서 어영부영 만들 수 있는 상품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들은 자본이 필요했다. 그것도 수백만 불의 대형 자본이 필요했지만, 그들의 뜬구름 같은 아이디어를 담보로 막대한 자금을 지원해 줄 금융산업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여기서 밥 노이스라는 인물이 실질적으로 실리콘 밸리를 이끄는 차세대 주자로 등장하게 된다. 그는 고든 무어와 뒤늦게 인텔사를 통해 합류하게 될 앤디 그루브와 함께 이 사건 이후 실리콘 밸리를 디지털 문명의 메카로 승화시키게 될 두 번째 쿠데타인 '마이크로프로세서 혁명'의 주역이 된다. 쇼클리와의 결별과 첫 번째 쿠데타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는데, 밥 노이스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는 사실은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그는 8인의 배신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기업 경영에 대한 경험을 갖고 있었고, 그의 탁월한 사업수완은 앞으로 30년간 치열하게 전개될 인텔사의 마이크로프로세서 전쟁에 모든 전략을 제공하게 된다. 결국, 노이스는 이 뜬구름 같은 트랜지스터 아이디어를 담보로 아서 록(Author Rock)이라는 금융 브로커를 통해 뉴욕의 거부였던 셔먼 페어차일드로부터 백 오십만 불이라는 자금을 무담보로 지원 받게 된다. 당시 계약조건은 만약 회사가 성공을 거두게 되면 뉴욕의 셔먼 페어차일드에게 경영권을 넘겨주는 것이고, 실패하면 어떠한 채무 부담도 지지 않고 깨끗이 물러난다는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아서 록은 이 과정을 통해 번처 캐피털이라는 새로운 금융상품을 세상에 선보이게 되는데, 밥 노이스와 아서 록의 합작으로 이루어진 이 새로운 투자 방식은 훗날 실리콘 밸리가 성장하면서 맨손의 벤처리스트들이 가장 빈번히 사용하게 될 자금조달 방식으로 정착된다. 8인의 배신자들에 의해 설립된 페어차일드사는 쇼클리 트랜지스터 연구소에서 자전거로 10분 거리도 안되는 마운틴 뷰의 찰스톤가에 소재한 초라한 2층 건물에 둥지를 틀고, 트랜지스터 제작을 박차를 가했다. 때마침 일어난 라디오 시장의 붐은 기존의 진공관을 사용한 고가의 라디오 시장에서 트랜지스터를 이용한 저가의 보급형 라디오로 시장의 흐름이 전화되는 과정에 있었고, 페어차일드사는 이 기회를 잡아 트랜지스터 분야에 선두주자로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페어차일드사의 도약에 결정적으로 불을 지핀 사건은 1957년 구 소련 연방이 쏘아올린 스푸트니크 1호(Sputnik)에 의해 형성된 미소(美蘇)의 스페이스 경쟁으로, 이 사건을 통해 미국은 로켓과 인공위성을 유동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작은 컴퓨터 제작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고, 페어차일드를 비롯한 실리콘 밸리의 기업들은 집채만한 에니악 컴퓨터를 책상 위로 올려놓을 수 있는 묘안을 짜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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