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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복구정보/IT NEWS

(펌) 하형일의 실리콘 밸리 스토리 : Episode3

by CBL 2018. 7. 19.




Episode 3. 떠오르는 모래성 "에디슨가의 가라지"

사람들은 종종 실리콘 밸리를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산업과 할리우드의 영화 산업에 비교하곤 하는데, 이들에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이들의 신화는 모두 '가라지 문화(Garage Culture)'에서 창조되었다는 점이다. 디트로이트에는 헨리 포드의 가라지가 있고, 할리우드에는 월트 디즈니의 가라지가 있으며, 실리콘 밸리에는 휴렛과 팩커드의 가라지가 있다. 가라지(Garage)란 목조 건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미국 스타일의 일반 가정집 차고(車庫)를 뜻한다. 영화 <백 투 더 퓨처>에서부터 만화 <스머프>까지 기상천외한 발명품들은 대개 아인스타인풍의 붉은 마파 머리와 허름한 복장을 한 과학자들이 목조 건물 가라지에서 좌충우돌하는 가운데 발명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20세기 '아메리칸 드림'은 바로 이런 아마추어들의 목조 건물 가라지에서 출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팔로알토시의 에디슨 가에 위치한 빌 휴렛과 데이빗 팩커드의 가라지는 공식적인 실리콘 밸리의 탄생을 알리는 이정표이며, 현재 그곳에는 실리콘 밸리의 1번지라는 공식적인 푯말이 박혀있다(애석하게도 스티브 잡스의 가라지에는 아무런 푯말이 없다). 빌 휴렛과 데이빗 팩커드는 테르만 교수의 프로젝트에 의해 팔로알토 지역에서 전자산업을 추진한 첫 번째 기업이자 지금까지 맨손으로 시작한 실리콘 밸리의 벤처리스트 가운데 비즈니스의 규모나 실리콘 밸리 형성의 기여도 차원에서 단연 으뜸이다.

혹자는 페어차일드 반도체 회사나 인텔사가 실리콘 밸리의 형성과정에 더욱 기여했다고 주장하겠지만, 노이스와 무어의 인텔사는 벤처 캐피털이라는 자금의 지원으로 설립된 근대적인 기업이며, 무일푼으로 아이디어 하나로만 승부를 걸어 성공한 휴렛팩커드와 애플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봐야한다. 휴렛과 팩커드의 이러한 모험정신은 훗날 실리콘 밸리를 찾아오는 수많은 아마추어 벤처리스트들에게 '실리콘 밸리 방식'이라는 기본 정신으로 승화된다. 그들은 무일푼으로 시작했기에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었고, 또 기존에 개발된 상품을 저렴하게 만들어 시장을 형성하기보다 세상에 없는 상품들을 만들어 그들만의 시장을 형성해 나갔다.

이러한 아마추어 벤처리스트들의 행진이야말로 실리콘 밸리의 가장 큰 매력이며, 오늘날 디지털 문명의 메카로 떠오른 실리콘 밸리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프레드 테르만 교수의 연락을 받은 휴렛과 팩커드는 1938년 그들의 고향인 팔로알토시의 367 에디슨 가에 위치한 허름한 목조 가라지에서 동전을 던져 누구의 이름을 회사 이름에 먼저 올릴지를 결정하게 된다. 뉴욕시의 제너럴일렉트릭(GE)사에서 매월 120달러를 받으면서 메니저 트레이닝 연수를 받고 있던 데이빗 팩커드에게는 고향으로의 복귀가 쉽지않은 결정이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휴렛과 팩커드는 자본금 500달러를 출발한 그들의 가라지에서 모델명 HP220A라는 오디오 발진기를 첫 상품으로 내놓았고, 그 해에 제작한 오디오 발진기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HP220B 8대를 월트 디즈니 사에서 제작하는 <판타지아(Fantasia)> 영화 제작의 필수 장비로 판매되는 행운을 잡으면서 창립 1년만에 안정적인 기업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이후 HP사는 뛰어난 성능과 우수한 품질의 전자관련 기기들을 시장에 선보이면서 전자기기 관련 시장의 빅 플레이어로 성장하게 되었고, 때마침 터진 제2차 세계 대전은 HP사가 한 걸음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다. 휴렛은 당시 몸소 육군 장교로서 태평양전쟁에 참전했으며, 전쟁기간 동안 HP사는 레이더 관련 마이크로 웨이브 신호 발진기를 제작하면서 사세(社勢)를 확장시켜 나갔고, 팔로알토 지역에 새 본사를 구축하게 된다. 일명 '레드우드 빌딩'이라 불리는 이 건물은 사무실, 연구소, 그리고 공장을 겸비한 다목적 건물구조 형태를 띄고 있는데 휴렛과 팩커드는 만에 하나 그들의 사업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슈퍼마켓으로 용도를 변경할 수 있도록 건물을 설계했다고 한다.

창립 10주년을 맞은 지난 1947년, 주식시장에 상장하게 된 HP는 한국전쟁을 통해 다시 한번 사세를 확장시키는 계기를 잡았고, 마침내 미국 500대 기업을 향한 힘찬 행진을 지속하게 된다. 특히 미니 컴퓨터와 워크스테이션 컴퓨터의 기반이 되는 데스크톱 전자 계산기를 세계 최초로 선보이면서 명실공히 실리콘 밸리를 대표하는 하이-테크놀로지 기업으로 변신한다. 이후 70년대와 80년대에는 미니 컴퓨터, 손에 쥘 수 있는 전자 계산기, 퍼스널 컴퓨터 그리고 HP사를 일반일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는 레이저 프린터인 레이저 젯을 시장에 선보이면서 연평균 4백억 달러의 매출액과 십만명이 넘는 사워을 거느리고 있는 실리콘 밸리의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발전하게 된다.

HP사의 성공은 오늘날 가라지에서 독수공방하는 전 세계의 젊은 벤처리스트들에게 희망의 찬가를 제공할 뿐 아니라, 휴렛과 팩커드가 추구한 일명 'HP 경영방식(HP Way)'은 훗날 모든 실리콘 밸리 기업들이 경영전략을 설정하고 조직을 구성하는데 필수 지침서로 활용되고 있다. 휴렛과 팩커드는 당시의 기업 문화로서는 파격적인 방식으로 HP사를 운영해 나갔다. 미스터와 미시즈의 격식을 무너뜨렸고, 바로 이름을 부르는 진보적인 기업문화를 60년대부터 형성해 나갔으며, 불필요한 결재라인의 파괴는 물론, 사무실의 칸막이를 모두 없내는 소위 오픈 도어 정책을 펼쳐나갔다.

또 미국 기업 최초로 융통성 있는 근무 시간제(Flex Time Work Schedule)를 실시했고, 나아가 복지를 강조하는 기업으로 이미지를 굳혀나갔다. 휴렛과 팩커드의 이렇듯 진보적인 경영전력은 7, 80년대 말의 오일 쇼크, '메이드 인 저팬'의 침략, 그리고 주식시장 붕괴 이후 수년간 지속된 불황을 성공적으로 헤쳐 나갈 수 있게 한 요인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빌 휴렛은 현재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팔로알토에서 사회복지 관련 프로젝트들을 추진하고 있으며, 데이빗 팩커드는 테르만 교수와는 대조적으로 그의 가라지에서 시작된 실리콘 밸리의 신화를 몸소 눈으로 확인하며, 1996년 3월 26일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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