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6. 실로 알 수 없는 IBM의 패배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만들어진 The PC는 애플 II와는 다른 관점으로 엔드 유저에게 다가갔다. 일단 겉보기부터 The PC는 애플 II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직육면체의 매우 보수적인 사무용 스타일을 고집했고, 모니터를 옵션이 아닌 표준 사양으로 넣었으며, 키보드가 본체에서 분리되어 사무 환경에 보다 적합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The PC가 기존의 애플 II보다 강력한 컴퓨터라고 보기는 힘들다(IBM PC와 애플 II의 스크린에 나타나는 비지칼크 스프레드시트는 모습과 기능 면에서 하등의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애플 II는 The PC에 포함되어 있는 않은 많은 기능들을 기본 사양으로 제공한 완전한 패키지 PC였다. The PC는 애플 II와 같이 3000 달러에 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비디오와 사운드 카드가 내장되어 있지 않았고 프린터와 모뎀을 연결시킬 시리얼이나 패러럴 포트조차 제공하지 않았다. 따라서 일반 엔드 유저가 The PC를 구입하여 컴퓨터의 기본 기능을 수행하려면 적어도 2~3000 달러의 추가 비용을 지출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The PC는 애플 II를 눌렀다. 80년대 초반 PC의 주 고객층은 일반 엔드 유저가 아니라 정부 기관과 기업들이었고, 이들은 사무자동화라는 매혹적인 메타포 앞에 기꺼이 2000 달러의 추가 비용을 지불했던 것이다. 불과 1, 2년 전 만해도 수십만 달러를 지불해야만 일반 업무에 적용시킬 수 있던 미니 컴퓨터의 성능을 단 몇 천 달러에 책상 위에서 맛 볼 수 있다는 The PC의 매력은 애플 II 컴퓨터를 초, 중, 고등학생의 다목적 게임기기로 전락시키고 만다. 여기서, 스티브 잡스는 "PC는 실질적인 성능보다 어필할 수 있는 이미지가 더욱 중요하다."라는 뼈아픈 교훈을 배우게 되며, 워즈니악의 '정신의 자식'과도 같았던 애플 II의 산소호흡기를 80년대 중반 자신의 손으로 떼내고 만다. 이것으로 애플 II와 IBM PC의 대결은 끝이 났다.
그러나 IBM사 또한 이 대결의 진정한 승자는 아니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챙긴다는 말이 있듯, 진짜 재미를 본 것은 MS-DOS, 로터스 1-2-3, 그리고 워드 퍼펙트와 같은 애플리케이션들 제공 업체들과 X86 프로세서의 인텔 등이었다.
밥 노이스와 고든 무어는 실리콘 밸리의 진정한 예언가였다. 10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엔지니어들에게 조롱의 대상이었던 '볼륨이 전부다!'라는 프로세서 철학은 이제 PC 산업의 '만류의 법칙'이 되었으며, 인텔사는 18개월을 주기로 어김없이 X86 프로세서를 밸리에 쏟아냈다. IBM사의 The PC를 통해 밥 노이스는 그토록 원하던 '볼륨'을 얻었고, 이제 인텔사는 더 이상 반도체 회사가 아닌 실리콘 밸리의 태양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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