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데이터복구정보/IT NEWS

(펌) 하형일의 실리콘 밸리 스토리 : Episode12

by CBL 2018. 7. 19.

사진: 윌리엄 쇼클리, 게리 킬달





Episode 12. 70년대의 윌리엄 쇼클리 '게리 킬달'

하드웨어 시장에 윌리엄 쇼클리와 로버트 노이스가 있다면, 소프트웨어 시장에는 게리 킬달(Gary Kildall)과 윌리엄 게이츠가 있다. 쇼클리와 게리 킬달은 서로 유사한 점이 많았다. 트랜지스터를 개발한 쇼클리가 반도체 산업이 결실을 맺는 과정에서 아웃사이더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었듯이, 게리 킬달로 최초의 운영체제인 CP/M(Control Program/Monitor)을 독자적으로 개발한 후 상업화에 성공하지만, 소프트웨어 산업이 결실을 맺는 과정에서 도중하차하게 된다.

쇼클리가 야심은 있었지만 성격적인 결함 때문에 '8인의 배신자들'에게 하드웨어 시장을 내주었다면, 킬달은 너무 야심이 없었기에 빌 게이츠에게 왕좌를 내준 비운의 주인공이다. 게리 킬달은 군 장교들에게 컴파일러 체계에 대한 강의를 전담하면서 PC 운영체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당시 인텔은 8080 프로세서를 시장에 선보이면서 메인프레임 시스템과 미니 컴퓨터 시스템을 에뮬레이트 할 수 있는 프로그래머를 찾게 되었다. 그렇게 인텔과 인연을 맺은 게리 킬달은 DEC 사의 시스템을 8080 프로세서에 적용시킬 수 있는 에뮬레이터를 만드는 작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CP/M이라 불리는 최초의 PC 전용 운영체제를 구상하게 된다.

사실 인텔사가 킬달에게 의뢰한 에뮬레이터는 PC용 운영체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 무렵 IBM사가 FDD(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개발하게 되면서 킬달의 작업은 운영체제를 만드는 쪽으로 급선회하게 되었고, 마침내 킬달은 DEC사의 PDP-10 미니컴퓨터의 TOPS-10 운영체제를 모방하여 어떤 8080 프로세서의 플랫폼에서도 완벽하게 돌아갈 수 있는 CP/M 운영체제를 완성하게 된다. 게리 킬달이 CP/M 운영체제를 거의 완성시켜 갈 무렵, PC 시장은 보다 싸게 컴퓨터를 제작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정도로 발전하고 있었으며, 임사이(Imsai)라는 PC 제조업체는 IBM사가 개발한 FDD를 주변기기로 판매하면서, 빠른 시일 내에 운영체제를 제공하겠다고 사용자들에게 약속하게 된다.

하지만 그 당시의 운영체제는 킬달의 CP/M 뿐이었으며, 너나 할 것 없이 PC 제조업체들이 CP/M을 요구함에 따라 마침내 킬달 혼자서도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제조업체가 인텔의 8080 프로세서를 내장한 컴퓨터를 제작하면, 킬달은 그 제조회사에서 적용시킨 각종 입/출력 장치들에게 호환성을 부여해야만 했는데, 이 작업은 엄청난 시간을 요구하는 매우 지루한 코딩작업이었다. 게다가 킬달은 프로그램을 짜면서 문제점에 봉착하게 되면 다시는 이러한 문제점이 일어나지 않도록 완벽한 해결책을 강구하는 프로페셔널 프로그래머 타입이었다.

킬달은 CP/M 운영체제에 대한 넘치는 수요와 지루한 코딩 작업을 근복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운영체제에 포함되어 있던 입출력과 주변기기의 컨트롤러들을 통제하는 부분을 바이오스(BIOS:Basic Input / Output System)란 이름으로 분리시켰다. 이로써 새로운 업체가 8080 프로세서로 컴퓨터를 제작하면, 바이오스만 재수정하여 CP/M을 적용시키는 매우 효율적인 방안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해나갈 수 있었다. 그는 CP/M 운영체제라는 상품 하나로 순식간에 백만장자가 되었으며, 그가 설립한 디지털 리서치 사는 IBM PC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도스가 탄생하기 전까지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소프트웨어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절대 권력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게리 킬달은 이것으로 만족했다. 그는 더 이상 운영체제에 대한 집착을 보이지 않았고, 더 이상의 물욕도 없었다. 만약 그가 빌 게이츠처럼 야망이 큰 인물이었다면, 퍼스널 컴퓨터의 역사는 지금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 분명하다. 그는 최초의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운영체제와 바이오스를 개발한 업적을 남긴 후 실리콘 밸리의 팽창하는 과정에서 도중하차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