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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복구정보/IT NEWS

(펌) 하형일의 실리콘 밸리 스토리 : Episode14

by CBL 2018. 7. 19.





Episode 14. 실리콘 밸리의 마지막 낭만주의자, 스티브 워즈니악

애플 I의 성공은 두 스티브에게 각기 다른 의미를 던졌다. 내성적인 성격의 워즈니악에게는 자신의 작품을 세상 사람들이 인정했다는 자신감을 의미했고, 잡스에게는 돈을 의미했다. 워즈니악은 더욱 자신감을 얻어 엔드 유저에게 어필할 수 있는 업그레이드 모델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바로 워즈니악의 두 번째 작품이자 마지막 작품인 애플 II였다.

애플 II는 워즈니악이 평소 꿈꿔왔던 '살아있는 퍼스널 컴퓨터'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즉 초, 중, 고등학생들에겐 무한대의 게임과 각종 프로그래밍 유틸리티를 제공했고, 대학생과 기업인에게는 원시적이긴 했지만 비지칼크(VisiCalc)라 불리는 최초의 스프레드시트를 제공했으며, 컴퓨터 마니아들에게는 프로그래머라는 멋진 직업을 선사했다. 또 실리콘 밸리를 포함한 전세계의 PC 취미가들은 자신들이 직접 제작한 애플 게임과 유틸리티 프로그램을 동호회와 컴퓨터 벼룩시장을 통해 교환하거나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기 시작함에 따라, 애플 II는 출시된 지 일년도 안돼 PC 시장의 표준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리고 애플 II의 성공은 워즈니악과 잡스를 실리콘 밸리의 백만장자 반열에 올려놓았고, 애플은 미국 기업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포츈지 선정 500대 기업'으로 등극하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워즈니악과 잡스는 그렇게 애플사를 화려하게 성장시켜 나갔다.

그러나, 애플사의 초창기 신화는 워즈니악과 잡스의 듀오 플레이만은 아니었다. 그 둘의 뒤에는 마이크 마큘라(Mike Markkula)라는 제3의 인물이 존재했다. 그는 인텔사에서 재정 담당책을 맡아온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로서, 실리콘 밸리 벤처 자금의 흐름을 꿰뚫고 있던 벤처 펀드 메니저였다. 그는 인텔사의 설립 과정에서 형성된 노이스, 무어 그리고 아서 록의 3각 구도를 재현하듯, 워즈니악과 잡스의 프로토 타입의 상품화 과정에서 자금 담당 역할을 훌륭히 소화내 냈다. 그리고 잡스와 워즈니악이 80년대 중반 조직의 정치적인 분쟁으로 애플사를 이탈할 무렵, 쿠퍼티노 애플타운의 제1인자로 등극하게 된다(이들 3인방의 파란만장한 이야기와 애플사의 영광 뒤에 숨어있는 고뇌와 좌절은 차후에 소개할 제2부 윈텔과 안티-윈텔 편에서 세부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어찌됐건 이들 3인방의 업적은 퍼스널 컴퓨터의 대중화를 의미했고, 이제 PC 시장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그리고 주변기기 시장의 3박자가 균형을 이루며 점차 세계적인 신드롬으로 확산되어 간다.

실리콘 밸리의 마지막 낭만주의자로 불리는 워즈니악은 욕심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는 애플사의 팽창과정에서 스스로 자유인으로 복귀를 선택했다. 누구도 컴퓨터를 혼자 제작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 혼자의 힘으로 해냈고, 모든 엔지니어들이 합심해서 더욱 강력한 컴퓨터를 만들어 낼 때 그곳에서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워즈니악은, 현재 로스가토스시의 작은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평범한 도시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황금사냥을 위해 밸리로 진출하는 무수한 엔지니어들과 벤처리스트들에게 워즈니악의 행보는 실리콘 밸리에 낭만주의와 로맨스를 가르쳐준다. 오늘날 애플사의 상징으로 굳어진 실험정신과 낭만주의는 워즈니악이 실리콘 밸리에 선사한 애플 컴퓨터보다 몇 배 소중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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