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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복구정보/IT NEWS

(펌) 하형일의 실리콘 밸리 스토리 : Episode13

by CBL 2018. 7. 19.





Episode 13. 홈스테드 고교의 '두 스티브'에 의해 애플 컴퓨터 탄생하다.

60년대 후반 인텔사의 천재적인 엔지니어들에 의해 탄생한 마이크로프로세서와 다이내믹 랜덤 액세스 메모리칩(DRAM)은 70년대 중반 퍼스널 컴퓨터(PC)라는 새로운 용어를 탄생시킨다. 데스크톱 컴퓨터의 출현은 매우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 즉, 세상의 모든 계량 상품들을 아날로그라는 수동적 미디엄에서 디지털이라는 능동적인 미디엄으로 바꾸어 놓는 대혁명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디지털 혁명에 불을 지핀 미츠사(MITS)의 알테어 8800은 퍼스널 컴퓨터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알테어 8800은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사와 게리 킬달의 운영체제를 탄생시키는 계기를 제공하고, 더 나아가 기계어를 이해할 수 있고 용접 능력을 갖춘 소수의 컴퓨터 취미가들에게 그들만의 유토피아 세상을 열어주었지만, 소위 엔드 유저라 불리는 보통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누구나 소유할 수 있고,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PC와는 너무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컴퓨터 본체, 모니터, 키보드, 프린터, 마우스 등을 두루 갖춘 퍼스널 컴퓨터는, 노이스의 인텔사도 빌 게이츠의 MS사도 아닌, 홈스테드 고교의 스티브 워즈니악(Wozniak)과 스티브 잡스(Jobs)라는 두 명의 '스티브'에 의해 탄생했다.

HP사와 인텔사에 이어 디지털 문명의 세 번째 혁명을 일으킨 주인공은 애플사이다. HP사와 인텔사의 주도하에 나날이 팽창하는 실리콘 밸리의 산업 구조는 가공할 만한 속도로 세상을 변화시켜나가고 있었지만, 보통 사람들의 생활을 바꾸어놓지는 못했다. 실리콘 밸리의 모든 기업들의 숙제는 알테어를 타자기처럼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PC를 만들어내는 것이었고, 워즈(Woz)란 애칭을 지닌 스티브 워즈니악이 마침내 그 숙제를 멋지게 풀어낸 것이다. 워즈는 디자인에서부터 최종 조립과정에 이르기까지 혼자 힘으로 '애플 I'이라는 퍼스널 컴퓨터를 만들어냈고, 20년 전 고안해낸 애플 I의 하드웨어 구조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오늘날의 PC의 구조에까지 명맥을 잇고 있다.

애플 I 프로젝트는 워즈니악의 순수한 취미 생활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70년대 후반 컴퓨터 관련 학문의 체계가 전무했던 그 시절, 한 평범한 고등학생의 개인적인 집착에서 출발한 퍼스널 컴퓨터에 대한 메타포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비즈니스맨은 존재하지 않았다. 워즈니악은 대학 생활을 잠시 접고, 팔로알토로 돌아와 HP사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할 당시, 애플 I 컴퓨터의 서킷 디자인을 HP사의 엔지니어들에게 보여주며, 나름대로 자문을 구했지만, 애석하게도 HP 엔지니어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결국 워즈니악은 독자적으로 애플 I을 제작하기로 결심한다.

만약 그때 HP사의 엔지니어들이 워즈니악의 디자인을 좀더 신중히 검토했거나, 워즈니악이 좀더 말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다면, 오늘날의 애플사는 HP사의 계열사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는 가정을 허용하지 않는다. 홈스테드 교교시절 수십 종의 퍼스널 컴퓨터를 디자인한 바 있는 워즈니악은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 재학 시절, '홈브루 컴퓨터 동호회(Homebrew Computer Club)'에서 고등학교 5년 후배인 또 다른 스티브 잡스와 역사적인 만남을 갖게 되고, 이들의 환성 콤비 플레이는 애플 I이라는 역사적인 컴퓨터를 탄생시킨다.

워즈니악과 잡스는 서로 단점이 많은 인물이었지만, 이 둘이 손을 합치면 불가능이란 없었다. 워즈니악은 자신의 엔지니어적인 숨은 능력을 홈브루 컴퓨터 동호회의 친구들에게 뽐내기 위해 애플 I 컴퓨터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되고, 잡스는 바로 워즈니악의 애플 I 프로토 타입을 보고 본능적으로 그의 컴퓨터가 돈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잡스는 사업가적 기질이 있었고, 워즈니악은 천재적인 컴퓨터 디자이닝 능력이 있었다. 모든 실리콘 상품이 귀하고 비쌌던 70년대 후반, 애플 I 컴퓨터에 필요한 대부분의 부속품들을 조달하는 업무는 잡스의 몫이었고, 이 부품들을 컴퓨터에 접목시키는 엔지니어적인 작업은 워즈니악의 것이었다. 만약 워즈니악이 애플 I 프로젝트에 랜덤 액세스 메모리칩을 적용하고 싶다는 말을 어렵사리 꺼내면, 잡스는 틀림없이 그 이튿날 워즈니악에게 현물을 조달해 주었다.

워즈니악은 엔드 유저를 위한 초소형 컴퓨터를 원했고, 그가 탄생시킨 애플 I은 킷트 상품이었던 미츠사나 임사이사의 컴퓨터보다 훨씬 작고 획기적이었다. 즉 8KB의 메모리를 탑재했는데, 워즈니악이 직접 작성한 애플 베이식이 4KB의 메모리를 요구했고, 나머지 4K를 활용해 사용자들이 베이식 프로그램을 돌릴 수 있었다. 또 키보드와 모니터를 장착할 수 있었다.

워즈니악은 곧바로 잡스의 로스가토스 차고로 달려가 주먹구구식으로 200대의 애플 I을 제작하게 되고, 이들은 일년 내에 홈브루 컴퓨터와 잡스의 인맥을 통해 모조리 팔아치우는데 성공한다. 애플 I의 상업적인 성공에 고무된 잡스는 워즈니악을 설득하여 자동차를 포함한 그들의 전 재산을 팔아 사업자금을 마련하게 되고, 1976년 4월 1일의 만우절을 택해 역사적인 애플사의 탄생을 세상에 알리게 된다.

왜 워즈니악과 잡스는 그들의 컴퓨터와 회사명을 '애플(Apple)'이라고 했을까? 여기에는 여러가지 설(設)이 있다. 워즈니악과 잡스가 프로토 타입을 완성한 후 가장 먹고 싶었던 과일이 애플이었다는 설에서부터, 아타리(Atari)사보다 전화번호부에 먼저 기재되기 위해 애플을 선택했다는 설까지 다양한데, 가장 정통으로 전해지는 것은 잡스와 워즈니악의 영원한 우상이었던 비틀즈의 음반회사 명칭이 애플 레코드사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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