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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복구정보/IT NEWS

(펌) 하형일의 실리콘 밸리 스토리 : Episode17

by CBL 2018. 7. 19.





Episode 17. 칼잡이 애플과 총잡이 IBM

1980년대 초, IBM사의 'The PC'는 기존 PC 시장의 모든 것을 획일화시켰다. 즉 The PC는 고만고만한 동네 야구팀으로 구성된 아마추어 리그에 프로 리그의 출현을 의미했으며, 이로 인해 알테어, 임사이, 코모도어, 탠디, 라디오 샥 등에서 제작된 독특한 모양과 기능의 퍼스널 컴퓨터들은 일제히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물론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회색 케이스에 MS-DOS가 내장된 똑같은 모양의 PC 클론(호환기종)들이다. 애플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PC 클론의 출현으로 애플 II의 PC 시장 점유율은 급속히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IBM PC 클론의 독주에 쇄기를 박은 불후의 명작, '로터스 1-2-3'이 출현한 1983년을 기점으로 애플사의 모든 PC들은 사무용 PC로서의 존재 위치를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

모든 상품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려면, 그 상품의 가치를 극대화시켜주는 보조 제품이 있어야 한다. 가령, 닌텐도의 게임기에는 '마리오 브라더스'가 있었고, IBM PC 클론에게는 로터스 1-2-3이 그 역할을 담당했다. 로터스 1-2-3은 기존의 표준 스프레드시트였던 '비지칼크(VisiCalc)'와는 달리 256K라는 가공할만한 메모리 사양을 요구했고, 이러한 요구를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 퍼스널 컴퓨터는 지구상에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일반 사용자들로 하여금 IBM PC를 사지 않으면 안되게 한 이유, 바로 로터스 1-2-3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보다 궁극적인 이유는 사무용 애플리케이션의 바이블로 통하던 로터스 1-2-3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 보다 더 큰 장벽은 모든 애플리케이션을 총체적으로 지휘할 수 있는 운영체제의 부재였다. 잡스에게 있어 로터스 1-2-3은 약간의 시간을 투자하면 풀 수 있는 일시적인 난제에 불과했지만 운영체제는 결코 몇 명의 엔지니어들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만만한 숙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애플 II는 시작부터 운영체제를 염두에 부고 제작된 컴퓨터가 아니었으며, 설상가상으로 애플 컴퓨터의 하드웨어 구조에 모든 열쇠를 쥐고 있던 워즈니악의 중도하차로 인해 애플 II는 MS-DOS라는 복병 앞에서 영원히 무릎을 꿇고 만다.

실력을 떠나서 칼잡이는 총잡이를 이길 수 없다. 그러한 도전이 얼마나 무모한가는 이미 앞서 시도했던 수많은 군소 컴퓨터 회사들이 몸소 보여주었다. 스티브 잡스는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애플 II에게 몇 년의 생명을 더 연장하는 자질구레한 처방 따위는 단호히 거부했다(물론 존 스컬리와 마이크 마큘라는 마지막까지 애플 II를 포기하지 않고 산소 마스크로 애플 II의 수명을 연장해가면서 애플사를 매킨토시와 애플 II라는 양대 구조로 분열시켰지만 결국 두 마라의 토끼를 모두 놓치게 된다). IBM사의 PC는 애초부터 애플 II를 죽이기 위해 탄생된 컴퓨터였으며, 스티브 잡스는 이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였다. 그러한 과정에서 잡스가 가장 괴로웠던 것은 한 수 아래의 컴퓨터에게 패배했다는 불쾌감이었다. 퍼스널 컴퓨터의 대중화를 선도한 천하의 애플컴퓨터사가 하등 나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렇고 그런 IBM PC에게 역전패를 당했다는 사실 때문에 그는 몹시 괴로웠다.

스티브 잡스는 이 시점에서 애플사의 미래는 물론이고, 실리콘 밸리의 역사를 180도 전화시키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인텔 프로세서와 MS-DOS로 획일화된 PC 시장에서,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의 새로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아키텍처 구조로 제작된 퍼스널 컴퓨터를 구상하게 된다. 왜냐하면 IBM PC 클론의 패러다임 안에서는 모든 것이 '달걀로 바위치기'라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극비리에 추진한 잡스의 새로운 도전, 코드명 리사(LISA)! 그것은 하드웨어, 운영체제 그리고 애플리케이션 작업을 모두 하나의 프로젝트로 봉합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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