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하형일의 실리콘 밸리 스토리 : Episode18

Author : 복구박사 복구박사 / Date : 2018.07.19 13:15 / Category : 데이터복구정보/IT NEWS

사진: 제록스파크 연구소 연구원들





Episode 18. 1984년은 결코 1984년이 아니었다.

마이클 크라이튼은 소설 <쥬라기 공원>에서 돌연변이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돌연변이는 멸종의 마지막 단계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생명체를 의미하지만, 더 이상 전자의 모습을 지니지 않는다. 즉, 돌연변이는 멸종해가는 종(種)의 기본적인 골격을 유지하지 않는 전혀 새로운 생명체로서 0.0001 퍼센트의 생존 확률을 뚫고 살아남은 매우 기적적인 생명체이다." 스티브 잡스의 매킨토시는 IBM사의 핵폭격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퍼스널 컴퓨터이며, 애플 II라는 전자의 모습과 모든 것을 달리한다. 극적으로 살아남은 말 그대로 돌연변이 상품인 셈이다. 1984년 슈퍼볼 광고를 통해 전세계에 방영된 "1984년은 결코 1984년이 아닐 것이다"라는 애플사의 매킨토시 광고 슬로건은 조지 오웰의 <1984년> 메타포를 빌려 수많은 PC 사용자들에게 뼈 있는 유머를 던짐과 동시에 애플컴퓨터가 돌아왔음을 실리콘 밸리에 널리 알리게 된다.

스티브 잡스가 매킨토시를 통해 선보인 GUI(Graphic User Interface) 개념은 밥 노이스의 집적회로와 테드 호프의 마이크로프로세서에 버금가는 무게를 지닌 것으로, 80년대 중반에 이루어진 모든 밸리의 상품들은 GUI 개념을 전제로 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초장기 룩 앤 필(Look & Feel)이라는 개념으로 소개된 매킨토시 운영체제는 난해한 도스 명령어 체계에 훈민정음 역할을 수행했으며, PC 시장은 이 순간부터 사용자들을 위한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빌 게이츠의 윈도 시리즈와 펜티엄 프로세서가 실질적인 GUI 시대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한 것은 사실이지만, 스티브 잡스의 매킨토시 운영체제는 80년대 중반 실리콘 밸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극명하게 제시했다. 즉, GUI 운영체제는 PC 시장을 한 차원 높여놓았을 뿐만 아니라 네트워크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미디엄의 출현을 앞당김으로써 90년대 중반 디지털 문명의 물꼬를 텄다.

퍼스널 컴퓨터 시장의 문화혁명에 견주는 '리사' 프로젝트는 스티브 잡스 개인에 의해 고안된 것이지만, 1984년 매킨토시가 햇빛을 보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본시 잡스는 공동 창업자인 워즈니악에 대해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고, 리사 프로젝트는 그 콤플렉스와 무관하지 않다. 즉 초창기 애플사의 탄생 과정에서 잡스는 워즈니악과 함께 공동 창업자라는 타이틀을 부여받기는 했지만, 밸리에서 그의 존재는 항상 워즈니악의 그늘에 가려 있었다. 고등학교 선배이기도 했던 워즈니악은 결코 잡스의 경쟁상대는 아니었지만, 애플사의 성장 과정에서 잡스는 자신의 역할이 상당 부분 평가절하되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눈에 비친 애플컴퓨터는 누가 뭐라 해도 워즈니악의 작품이었으며, 애플사의 성장 과정에서 잡스의 역할은 그저 수완 좋은 세일즈맨에 불과했다.

그러던 잡스에게 기회가 왔다. 80년대 초반 워즈니악에게 불어닥친 뜻밖의 악재들이 잡스를 애플사의 구심점으로 각인시키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다. IBM사가 PC 시장을 총체적으로 개편하던 1981년 워즈니악은 항공기 추락 사고로 애플사의 경영 일선에서 2년이 넘는 공백을 갖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이 기간 동안 개인적으로 추진한 록 콘서트 프로젝트가 3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냄에 따라 워즈니악은 애플사의 경영에서 영원히 자신을 분리시키고 만다. 이쯤되면 잡스가 어떻게 매킨토시를 처음 구상하게 되었을까 궁금해진다. 그 출발점은 1979년 우연한 기회에 팔로알토 시에 소재한 제록스 파크(Xerox PARC) 연구소를 방문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복사기 산업의 선두주자였던 제록스사가 미래 인쇄산업의 표준을 설정하기 위해 설립한 파크연구소는 80년대 후반 실리콘 밸리의 모든 창조물에 대한 근본적인 테크놀로지를 제공했다. 지난 20년간 퍼스널 컴퓨터 시작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주도한 테크놀로지를 평가하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윈도와 매킨토시 운영체제로 대변되는 GUI, 휴렛팩커드의 레이저 프린터, 그리고 이더넷(ethernet)이라 불리는 네트워크 테크놀로지를 언급할 것인데, 이 세 가지 기술이 모두 제록스 파크연구소에 적을 두고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제록스사는 이 가운데 어느 것도 자사의 이름으로 상업화시키는데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 또한 '순수의 시대'로 대변되는 6, 70년대 실리콘 밸리 엔지니어들의 모습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당시 그들이 가장 가치를 둔 것은 돈이 아니라 자신들의 연구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기대였다.

결국 그들의 바람대로 마우스와 풀 다운 메뉴 체제의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는 잡스에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고, 그는 이 거대 프로젝트에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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