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하형일의 실리콘 밸리 스토리 : Episode4

Author : 복구박사 복구박사 / Date : 2018.07.19 12:41 / Category : 데이터복구정보/IT NEWS


사진: 줄리어스 블랭크 (Julius Blank), 빅터 그리니치 (Victor Grinich), 진 호에니 (Jean Hoerni), 유진 클라이너 (Eugene Kleiner), 제이 라스트 (Jay Last), 고든 무어 (Gordon Moore), 로버트 노이스 (Robert Noyce) 와 샐던 로버츠 (Sheldon Roberts)





Episode 4. 마이크로프로세서의 탄생 & 메인 프레임과의 먼 이별

마이크로프로세서의 탄생은 실리콘 밸리의 어떤 스토리보다 흥미진진하다. 무어의 법칙으로 대변되는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진화과정은 이 다큐멘터리 제3부쯤에 나올 '프로세서, 프로세싱, 그리고 프로그레스, 섹션에서 심도 깊게 다루겠고, 여기서는 마이크로프로세서의 탄생과정과 실리콘 밸리의 형성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될 소수 정예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보려고 한다. 마이크로프로세서 탄생과정에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은 1947년 뉴저지의 벨연구소에서 일명 '인벤션팀(Invention Team)'으로 불리는 트랜지스터 3인방, 즉 존 바르딘, 월터 브라튼, 그리고 윌리엄 쇼클리에 의해 발명된 트랜지스터의 출현이며, 이들은 거대한 메인프레임의 진공관을 대체시킬 신소재 장치의 기본 메커니즘을 개발, 1956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트랜지스터 3인방의 팀장이었던 윌리엄 쇼클리는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실리콘 밸리의 팔로알토에서 보냈고, 그 당시 대부분의 인재들이 그랬듯이 청운의 꿈을 안고 동부의 명문인 MIT로 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벨연구소의 책임 연구원으로 있던 머빈 켈리에 의해 스카우트되어 벨 연구소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때 머빈 켈리는 쇼클리에게 그보다 20년 먼저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C.J. 데이비슨(C.J. Davisson)과 함께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제안하지만, 그는 머빈 켈리의 진공관 연구소로 방향을 바꿔 '인벤션 팀' 3인방의 일원으로 트랜지스터를 개발하게 된다. 물론 쇼클리의 트랜지스터 개념이 처음부터 거대한 진공관을 사용하는 집채만한 대형 컴퓨터를 책상 위의 소형 퍼스널 컴퓨터로 바꾸어놓는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새로운 쇼클리의 패러다임은 마치 요리가 서너 시간과 엄청난 양의 음식재료를 투자해 고작 서너 명이 먹을 수 있는 먹거리를 제공하는 등의 비효율성에서 팔피한 개념으로, 값싸게 복제될 수 있는 비콤C 한 알로 모든 영양소를 대치하며, 기존의 먹거리가 제공하는 포만감을 그대로 재현시킬 수 있는 마술적인 메타포를 내포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트랜지스터를 마이크로프로세서로 둔갑시키려면 각각의 트랜지스터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접합기술이 필요했는데, 쇼클리는 이러한 꿈의 마이크로프로세서를 향한 마지막 단계에서 조직, 인력, 자본의 3박자를 모두 갖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의 내분으로 역사의 현장에서 도중하차하게 된다. 1940년대 말 벨 연구소에서 윌리엄 쇼클리를 주축으로 하여 개발된 트랜지스터는 인텔사의 창립자인 밥 노이스에 의해 개발된 집적 회로, 즉 IC(Integrated Circuit)의 탄생 이전까지는 상업적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무한한 가능성만을 지닌 꿈의 소재로만 알려져 왔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미 연방 정부와 동부의 엘리트 엔지니어들은 원자폭탄이나 수소폭탄과 같은 보다 강력한 파괴력을 지닐 수 있는 신무기의 개발이나 이 무기들을 보다 멀리 발사할 수 있는 로케트 기술에 모든 열정을 바치고 있었던 터라, 쇼클리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그들의 관심 테마와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이에 쇼클리는 프레드 테르만 교수의 종용에 의해 이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씨앗을 가지고 고향인 팔로알토로 돌아오게 되고, 여기서부터 실리콘 밸리는 무한한 번영을 보장하는 약속의 땅으로 변모하게 된다. 아이러니한 것은 쇼클리의 트랜지스터 개념이 당시 대형 컴퓨터와 메인 프레임 업체였던 IBM사에게는 철저히 외면 당했다는 사실이다.

무어의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대량 생산에 의한 점진적 이윤의 창출이란 실리콘의 개념을 그 당시 메인 프레임 사업을 독접하고 있던 IBM사는 이해하지 못했고, 또 그들의 독과점 아성을 붕괴시킬 수 있는 이 새로운 개념에 그들은 가치를 두지 않았다. 물론 컴퓨터라는 기기 자체를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상품으로 인식될 수 없었던 시대의 가치관도 한 몫 거들었다. 하지만 그들로 하여금 트랜지스터의 개념을 소홀히 하게끔 한 가장 궁극적인 이유는 한 대의 메인 프레임 컴퓨터가 창출해내는 부가가치가 오늘날의 퍼스널 컴퓨터 관점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천문학적인 이윤을 창출했기 때문이다.

스티브 워즈니악이 애플 컴퓨터를 만들게 된 궁극적인 계기도 록히드사의 엔지니어였던 아버지가 집을 팔아 그에게 컴퓨터를 사줄 확률보다는 그가 스스로 컴퓨터를 만드는 것이 컴퓨터를 소유하는 지름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쇼클리는 팔로알토로 복귀하자마자 테르만 교수의 프로젝트였던 스탠포드 인더스트리얼 파크의 한 모퉁이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쇼클리 트랜지스터 연구소 (Shockley Transistor Laboratory)를 설립했고, 자신의 연구소에서 개발하게 될 포 레이어 다이오드(Shockley Four Layer Diode)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될 소수 정예의 엔지니어들을 동부에서 스카우트해 오게 되는데, 그들이 바로 실리콘 밸리의 첫 번째 쿠데타를 일으키게 될 그 유명한 '8인의 배신자들'이다.

즉, 밥 노이스, 고든 무어, 유진 클라이너, 빅터 그리니치, 쥴리우스 블랑크, 진 호어니, 제이 라스트가 그들로 이들은 쇼클리를 배신하고, 그들만의 독집 조직인 페어차일드 반도체 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그리고, 이 '8인의 배신자들'은 '환희의 밸리'에서 실리콘 밸리라는 공식 명칭을 부여함과 동시에 메인프레임과의 먼 이별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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